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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남자

청포도 - 이육사

by likebnb 2010. 9. 27.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굳이 따지자면 칠월도 아닌데 갑자기 왠 청포도 타령이냐구요? 이야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조금은 길었던 연휴를 마치고 첫 출근한 동료들이 모여서 지난 연휴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담양과 보성 등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마침 저도 몇 해 전에 보성 녹차밭에 다녀왔던 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요. 얘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뒤적이다가 바로 이 청포도 사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첫 소절의 싯구는 마치 하나의 인식의 덩어리 마냥 서로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울림으로
또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요.

아무튼 이육사님의 청포도는 저에겐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는 명시 중에 명시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시에 대한 해설들은 뒤로 하고라도 우선은 시어들 자체가 입에 착 달라붙는 것들이어서 쉬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오랫만에 떠올리게 된 청포도를 음미하며 상큼하고도 낭만적이며 희망에 찬 오후를 맞이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