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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삶의 빛 - 하루의 기억을 간직하다

by likebnb 2010. 7. 6.





하루의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서쪽 하늘의 빛은 맹렬하던 기운이 가시고
따스하고 온화한 기운만 남는다.

하룻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기왓장들도  이제는 서서히 식어 간다.
하지만 빛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한 동안은 온기가 남을 것이다.

기왓장 사이사이로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은
아쉬운 마음에 그 빛을 휘어감고 놓질 않는다.

하루 동안 세상의 모든 이에게 비취던 빛,
그리고 그 모든 사물들이 
그 빛을 반사하면서 만들어냈던 무수히 많은 색채들.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마지막으로 그 색채들을
고이 간직하려는 듯 구름에 투영하는 노을 처럼
우리는 그 날 하루의 기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지난 봄에, - 이렇게 말하니 한참이 지난 것 같다. 불과 석달 전의 일인데 말이다 - 북청동에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한옥마을 골목길들을
누비면서 담았던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이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담은 사진이다.

왠만한 사진책을 열면 쉬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 '빛'이라는 단어고 이 빛이야말로 사진의 본질이자 사진의 궁극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있어서 빛을 담는 작업으로 대변되는 사진은
단순하게 사물에서 반사되는 파장으로서의 빛깔 만이 아니라 그 색채들을 실존하게 하는 빛 자체와 그 빛에 어우러진 사물 그리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기억 또는 추억들을 담아내는 일련의 작업이다.

우선은 삶의 현장에서 동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걷는 것은 필수.
찾아낸 기억의 매개체를 비추는 맘에 드는 빛을 기다리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물론 이것은 내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절이 빚어내는 빛의 질감은 일년 중 한 때 뿐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빛이 떠도는 계절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이런 연유로 지난 사월 초에 인사동에서 시작해서 삼청동, 북청동, 가회동으로 부지런히 걸었던 날에 맘에 드는 몇 장의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담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오랫만에 골목에서 골목으로 걸어다니면서 어린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고향을 떠난 이후로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여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가슴 뭉클한 일이기도 했다.

봄볕도 즐기고 사진의 매력에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이 봄볕은 계절이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같은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내년, 내후년의 빛이 이 빛과 또 같을 수 있을까?




[쓰고 나서]
이 날 담았던 사진들을 앞으로 몇 번에 나눠서 기고해 볼 생각이다. 한 장 한 장 제대로 당시의 느낌을 기록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