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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4

살아 있는 동안 걷는다면 그것이 나의 길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옥수동에서 서울숲으로 진입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중에 발견한 이 담쟁이를 만난 것이 벌써 오래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무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햇살이 따가운 날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 녀석의 걸음걸이가 당차 보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과연 이 친구는 그 걸음걸이의 속도가 어느 정도일까요? 토끼와 경주를 벌였던 거북이나 나무 위에서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르는 나무늘보, 아니면 느림의 대명사인 달팽이와 견줄 수 있을까요.말도 안되는 소리죠. 맞습니다. 웅크리고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 봤지만 이 녀석이 그 발을 떼는 것을 볼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친구가 이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학적인 공리와 공.. 2012. 12. 2.
담쟁이 처럼 한걸음 한걸음 씩 걸어라 식물들 중엔 발이 달린 짐승 처럼 그 자리를 옮겨다니는 것들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생을 마감할 때 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물들에게 기대하는 것이지만요. 이렇듯 우리가 상식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쉬이 여기는 바람에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은줄 압니다. 담쟁이의 흡판도 그런 류의 일반적인 상식 덕분에 가려져 있는 재미난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담쟁이 하면 당연히 벽을 타고 기어 오르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벽에 그렇게 달라 붙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전에 제가 북청동에서 담았던 사진과는 대조적인 오늘의 이 사진 한 장은 살아있는 담쟁이의 생명력과 이동 본.. 2011. 1. 21.
삶의 빛 - 봄볕을 사랑한 담쟁이 봄볕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따갑다. 담쟁이의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흡판이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인 것 처럼 홀로 서기를 했다. 아마도 지난 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이리라. 담쟁이는 본능적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능의 구체적인 표출로서의 흡판은 참으로 놀랄 만 한 것이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본능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동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흡판은 흡사 우리의 발과도 같은 것이리라. 봄볕을 쫓아 나섰지만 생동하는 새 생명이 아닌 지난 해 봄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빛에 반응하지 않는 담쟁이를 보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상에 젖어 들었다. 오우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벽화 처럼, 한 가닥 한 가닥을 마치 누군가가 풀.. 2010. 7. 10.
생명의 숲, 공존의 숲 생명의 숲, 공존의 숲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에 딱딱하게 옹이가 들어 앉았습니다. 바깥 세상과의 소통을 가로 막는 높은 담장이 있습니다. 이리 파이고 저리 깨어진 상처투성이 폐허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순이 돋아나고, 잎이 자라나며 줄기가 넘어갑니다. 어머니 대지 위엔 수많은 각양 각색의 생명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의 생명으로만 메워진 지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사는 모양이나 항취가 다름에도 그들은 조화롭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나누며 살아갑니다. 서울의 숲은 공존하는 곳, 그런 생명들이 있는 곳입니다. 2010.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