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옥수동에서 서울숲으로 진입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중에 발견한 이 담쟁이를 만난 것이 벌써 오래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햇살이 따가운 날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 녀석의 걸음걸이가 당차 보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과연 이 친구는 그 걸음걸이의 속도가 어느 정도일까요?
토끼와 경주를 벌였던 거북이나 나무 위에서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르는 나무늘보, 아니면 느림의 대명사인 달팽이와 견줄 수 있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맞습니다. 웅크리고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 봤지만 이 녀석이 그 발을 떼는 것을 볼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친구가 이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학적인 공리와 공식 그리고 논리적이고 합당한 이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이 친구가 살아 있다는 것과 살아 있는 동안 끊임 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 여리고 여린 발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경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갈 것입니다.
매 순간의 성실함과 인내함이 퍼지고 퍼진 끝에 온 벽을 덮을 것입니다.
이렇게 느린 걸음의 삶을 사는 동안에 우리 곁을 지나가는 "빠른 이"들은
자신의 빠른 걸음과 달음박질에 우쭐해 "충고 아닌" 충고의 말을 던지곤 합니다.
"이봐 나 처럼 달리려면 그래선 안 되지! 양 쪽 발이 모두 땅에 붙어 있어선 안 된다구."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세상이 있으니 그것은 지극히 "느림의 세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걷는다는 것입니다. 꾸준하게 멈춤 없이...
빠르고 느린 것은 하나의 관점일 뿐 그것 자체가 우리의 본질은 아닌 것이지요.
이제는 천천히 아니 느릿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걷는 걸음을 걷고자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 걷는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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