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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중에

AI 시대, 우리는 왜 새로운 개발방법론이 필요한가

by likebnb 2026. 7. 30.

머리도 식힐 겸 쥐라기 공원 1편을 다시 봤다. 공원의 안전성과 투자 적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존 해먼드는 세 명의 과학자와 투자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를 초청한다. 살아 있는 공룡을 보여주고, 어떻게 공룡을 복원했는지를 설명한 뒤 점심 식탁에서 의견을 묻는다. 그때 이안 말콤 박사가 존을 바라보며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존, 당신과 당신의 팀은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취하고 그다음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기에 그 지식에 대한 책임감도 갖지 않았지요. 당신들은 천재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고, 가능한 한 빨리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만 몰두했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특허를 내고, 포장해서 점심 도시락처럼 팔기 시작했어요."

이 대사를 듣자마자—정확히는 자막을 읽자마자—영화를 멈췄다. 나는 이미 몇 달 동안 새로운 개발방법론을 실무에서 실천해 왔고, 그 근간을 이루는 철학을 글로 정리하는 HuNova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막상 시작해 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며 고전하던 때였다. 머리를 식힐 겸 보던 영화에서 말콤의 통찰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시대도 다르고 대상도 달랐지만, 그가 던진 일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HuNova는 이제 막 시작한 프로젝트라 아직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결과물은 없다. 하지만 말콤의 말을 빌려, AI 시대를 살아가는 개발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영화를 멈추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30년 동안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술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플랫폼을 익히고, 새로운 방법론에 적응하는 일은 개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나 역시 새로운 기술을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1년은 달랐다. 생성형 AI는 기술이 진화하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새로운 모델과 도구를 접하고, 남이 축적한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지식이 정말 내 것일까? 말콤의 대사를 곱씹으며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해하지 못한 지식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채를 짊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채를 '기술 부채(Technical Debt)'​라고 부르고 싶다.

전통적인 기술 부채는 더 나은 설계와 충분한 검증을 뒤로 미루고, 지금의 개발 속도를 선택한 대가를 미래에 지불하는 것이다. 설계를 단순화하거나 검증을 생략해 빠르게 개발하는 대신, 그 비용은 결국 유지보수와 수정 과정에서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한다.

AI 시대에도 기술 부채의 본질은 같다. 다만 이제 부채는 코드에만 쌓이지 않는다. 지식과 설계, 문서와 판단까지 빠르게 만들어 내는 AI의 특성 때문에, 이해와 검증을 생략한 결과물은 그것이 코드든 지식이든 설계든 미래의 부채가 될 수 있다. AI는 이렇게 확장된 기술 부채가 쌓이는 속도와 규모를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폭시켰다.

바로 그 점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AI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데, 정작 개발자들의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 걸까. 아니,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걸까.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개발방법론은 끊임없이 변해 왔다. 폭포수 모델(Waterfall), CBD(Component-Based Development), Agile. 시대마다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했고, 많은 개발자는 이전 방식을 밀어내는 새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경험은 조금 달랐다. 현장에서 각각의 방법론을 적용하면서 일해 보니, 새로운 방법론은 이전 방법론을 부정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각 방법론은 그 시대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해 온 것이다.

폭포수 모델은 요구사항이 비교적 안정적이던 시대에 계획과 추적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나 역시 폭포수 모델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계획과 문서의 힘을 배웠다. CBD를 적용하면서는 재사용 가능한 구조와 모듈화가 생산성과 안정성, 신뢰성을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경험했다. Agile을 실천하면서는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계획 못지않게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각 방법론의 대응 방식은 달랐지만, 해결하려 했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품질을 높이며, 복잡성을 관리하고,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 이것이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소프트웨어 공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AI 시대에도 기존 방법론이 추구해 온 본질은 지키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개발 원칙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AI는 코드를 더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 문서를 만들고, 테스트를 생성하고, 버그를 찾는 일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해낸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결국 AI가 바꾼 것은 개발의 방식과 속도다. 코드를 작성하는 비용은 크게 낮아졌다. 개발의 무게중심은 코드 작성에서 판단과 검증으로 이동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정의하고,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며, 그 판단이 타당한지 검증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개발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을 근거와 함께 설명하며,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언제든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코드와 문서는 그 판단을 서로 다른 형태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AI 시대에도 소프트웨어 공학이 지켜야 할 원칙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좋은 개발 프로세스는 판단이 근거와 함께 기록되고, 검증되며, 새로운 근거 앞에서 언제든 다시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AI 시대의 개발방법론도 결국 이 원칙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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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HuNova 개발방법론 연작의 첫 번째 글이다.

다음 글에서는 HuNova를 통해 정리하고 있는 새로운 개발방법론의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AI 시대의 개발을 왜 기술 글쓰기라고 보는지 살펴본다. 또한 판단의 맥락을 어떻게 축적하고, 그것이 어떻게 Pattern과 Principle로 발전하는지 살펴본다.

- [다음 글: AI 시대의 개발방법론, HuNova는 무엇을 축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