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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동3

삶의 빛 - 빛과 그림자 북청동에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들을 누비다가 발견한 어느 집의 담장입니다. 모퉁이가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빛이 비취는 부분과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으로 나뉘는군요. 담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월 초의 봄볕에 물오른 개나리도 샛노란 광채를 쏟아내고 있음과 동시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형태와 형체가 있는 사물이라면 또 그 사물만의 고유한 빛을 반사해 내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림자 또한 갖게 됩니다. 때론 그 그림자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요. 빛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렇더군요. 당장에 앞에 보이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광채이지만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가 같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검은 그림자라고 해서 반드시 좋지.. 2010. 7. 11.
삶의 빛 - 봄볕을 사랑한 담쟁이 봄볕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따갑다. 담쟁이의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흡판이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인 것 처럼 홀로 서기를 했다. 아마도 지난 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이리라. 담쟁이는 본능적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능의 구체적인 표출로서의 흡판은 참으로 놀랄 만 한 것이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본능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동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흡판은 흡사 우리의 발과도 같은 것이리라. 봄볕을 쫓아 나섰지만 생동하는 새 생명이 아닌 지난 해 봄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빛에 반응하지 않는 담쟁이를 보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상에 젖어 들었다. 오우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벽화 처럼, 한 가닥 한 가닥을 마치 누군가가 풀.. 2010. 7. 10.
삶의 빛 - 하루의 기억을 간직하다 하루의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서쪽 하늘의 빛은 맹렬하던 기운이 가시고 따스하고 온화한 기운만 남는다. 하룻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기왓장들도 이제는 서서히 식어 간다. 하지만 빛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한 동안은 온기가 남을 것이다. 기왓장 사이사이로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은 아쉬운 마음에 그 빛을 휘어감고 놓질 않는다. 하루 동안 세상의 모든 이에게 비취던 빛, 그리고 그 모든 사물들이 그 빛을 반사하면서 만들어냈던 무수히 많은 색채들.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마지막으로 그 색채들을 고이 간직하려는 듯 구름에 투영하는 노을 처럼 우리는 그 날 하루의 기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지난 봄에, - 이렇게 말하니 한참이 지난 것 같다. 불과 석달 전의 일인데 말이다 - 북청동에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한옥마을.. 2010.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