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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남으로 창을 내겠소

by likebnb 2010. 7. 27.





남으로 창을 내겠오     詩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오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꾄다 갈리 있오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와 자셔도 좋오

왜 사냐건
웃지요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서정시들 중에서도 외우기가 쉬워서(짧으면서도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입에 달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이다. 아마도 많은 친구들이 이 시의 마지막 한 소절 "왜 사냐건 웃지요"를 수도 없이 인용했을 것이다. 삶의 적재적소에서 말이다.

새삼스럽게 그 시절 국어 수업시간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다만 이제와서 당시 배웠던 싯구들이 한층 더 새롭게 마음에 와 닿는다.
시인 김상용은 20세기의 시작인 1902년에 태어나 소년시절에 3.1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분이다. 이 시는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39년에
문장사의 망향이라는 문집에 발표된 것인데 일제 강점기 한복판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다 할 수 없었던 젊은이가 자연으로
눈을 돌려 낭만적이면서도 관조적인 어조로 유혹을 뿌리치고 단지 때를 기다리며 자연에 묻혀서 살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의 강점기였던 시절을 역사책에서 단지 문자로만 배워서 알고 있을 뿐이다.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할 수 없었고 국어로
내가 쓰고 싶은 내생각을 글로 맘것 쓸 수 없었던 시절이 수십년 간 지속되었던 암흑기가 있었다지만 우리 몸으로 실감하지 못했기에
그것이, 그런 시절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은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이 남긴 글들의 행간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겪는 서러움과 그 나라를 되찾고 싶은 열망, 자유를 향한 끝없는 욕구를 보일듯 말듯 외줄에 걸쳐 놓은 것을 본다.

어찌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호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낭만과 관조는 요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매서운 눈매를 가져야 할 것이고,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또 빼앗기지 않도록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무엇 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옳고 정당한 것에 주장할 수 있도록 그 목소리를 지켜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