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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다시 가 본 빅토리아항의 야경

by likebnb 2013. 12. 24.




몇 해 전 이른 봄에 홍콩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홍콩의 이른 봄은 날씨가 궂다. 

항공료도 아끼고 빅토리아항의 야경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홍콩에서 출발하는 네덜란드 행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선택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침사츄이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몇 분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층 버스 차창 밖으로 반가운 풍경들이 지나간다.

침사츄이역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우산 없이 걷기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구룡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고 몇 발자국 걷기 시작하자

마치 엊그제 잠시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지난 번에 구룡공원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넓다.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지는 빗방울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사진기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기억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면서 감회에 젖어든다.


한 손엔 우산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엔 사진기를 든 한 남자. 무언가를 좇는 듯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면서 공원의 여기저기를 훓는다.

이제 우산은 한계에 다다랐다. 몇 시간 째 빗 속에 노출된 우산은 그 피부가 포화상태가 되었고 이내 터진 물집처럼 여기저기서 빗물을 

쏟는다. 우산 속 남자도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젠 사진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빗줄기를

피해야 할 터다.


공원 한 쪽 끝에 자리 잡은 실내체육관에 딸린 맥도널드 매장에서 비를 피하기로 한다. 가방에서 마른 수건 한 장을 꺼내 아쉬운 대로 

물기를 닦아내지만 온 몸 가득 들어찬 한기를 몰아내기엔 부족하다. 그래도 매장 안으로 들어오니 유리 창 밖의 풍경이, 장대비가 내리는

구룡공원의 낯선 풍경이 따뜻해 보인다. 


그리고 밤이 왔다. 비는 어느새 그치고

몇 해 전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 밤의 빅토리아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번엔 제 시간에 빅토리아 앞에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