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날이 궂은 날이면 뜨듯한 아랫목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책을 읽곤 했다. 당시 내겐 공부방이나 책걸상이 따로 있질 않았었기에
자연스레 큰방 아랫목은 나의 독서실이자 독서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유하지 못했을 뿐더러 빠듯했던 살림이었지만 어머니께선 아들래미에게 책 사주시는 것엔
후하셨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통하여 갖가지 꿈을 꿀 수 있었다.
당시 읽었던 책들 중에서 지금도 종종 기억에 떠오르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십오 소년 표류기'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바로 그 '십오 소년 표류기'의 작가인 쥘 베른의 명작 중의 명작인
'신비의 섬(The Mysterious Island)'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였지만
공간적으론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남태평양의 한 섬이 이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이 외딴 섬에 불시착하게 된 다섯 명의 남자들 - 쥘 베른의 소설에선 좀처럼 여자가 등장하질
않는다 - 은 사이러스 스미스를 중심으로 하여 그들 만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신비의 섬을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선 반드시 책의 앞표지 부분에 있는 지도를 머릿 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처음 부터 이 지도에 나오는 지명이나 구축물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로지 다섯 남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어 이름 붙여지고 개척되어 구축된 것들이다.
물론 이 섬의 지도를 맨 처음 디자인 하고 각각의 이름을 지어낸 것은 쥘 베른 자신이다.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드문드문 등장하는 삽화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삽화는 쥘 데카르트 페라(Jules Descartes Ferat, 1829~90)가 판화로 제작한 것으로 데카르트 페라는 베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수차례 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 삽화들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한 장면이 있다면 사이러스 스미스가 그의 지적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발견한
천혜의 요새를 그린 것으로 삽화를 통해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이러스가 이 요새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아마도 링컨섬에서의 첫 겨울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쥘 베른의 소설들은 거의 모두 이런 모험을 다룬 것들이다. 더우기 그의 소설엔 항상 풍부한 과학과 기술 정보가 가득하다.
물론 스토리의 구성이나 전개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몰입하도록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서도 읽어 내려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은 독자들을 배려함일 것이다.
사실 내 경우에도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을 - 그의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다 - 거의 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주말을 다 소비했지만 말이다.

2권과 3권을 읽는 중에 이 모험을 위해 쥘 베른이 설치해 놓은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가 이미 발표했던 이전 소설의 주인공들을 '신비의 섬'으로 불러들여서 이 작품을 통해 그 주인공들의
최후를 알려주는 친절도 베풀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읽으시라. 물론 그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이전 소설들을 이미 읽었다면
더욱 그 재미가 더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흠이 될 일은 없다. 마지막으로 십오 소년 표류기를 재미있게
읽으셨던 분이라면 반드시 이 책, '신비의 섬'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Thinking like Barna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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