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속에서

수필 '찰밥'을 읽고

by likebnb 2010. 6. 16.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새벽에 문을 나선다. 오늘 친구들과 소풍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점심 준비로 찰밥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소학교 때 원족을 가게 되면 여러 아이들은 과자, 과실, 사이다 등 여러 가지 먹을 것을 견대에 뿌듯하게 넣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모여들었지만, 나는 항상 그렇지가 못했다. 견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찰밥을 책보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따라가야 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숯불을 피워가며 찰밥을 지어 싸주시고 과자나 사과 하나 못 사주는 것을 몹씨 안타까워 하셨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여축은 못 해도, 내 원족 때를 생각하고 고사 쌀에서 찹쌀을 떠두시는 것은 잊지 아니하셨다. 나는 이 머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아는 까닭에, 과자나 사과 같은 것은 아예 넘겨다보지도 아니했고, 오직 어머니의 정성어린 찰밥이 소중했었다. 이것을 메고 문을 나설 때 장래에 대한 자부와 남다른 야망에 부풀어, 새벽 하늘을 우러러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말하자면 이 어머니의 애정의 선물이 어린 나에게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소풍 혹은 등산을 하려면 으레 찰밥을 마련하는 것이 한 전례가 되고 습성이 된 셈이다.

오늘도 친구들과 야유를 약속한 까닭에 예와 같이 이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나선 것이다. 밥을 들고 퇴를 내려서며 문득 부엌문 쪽을 둘러봤다.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다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슬픈 일이다. 손에 밥은 들려 있건만 그 어머니가 없다.

- 후략 -


[찰밥]/윤오영/수필집, [방망이 깎던 노인] 중에서/범우문고



[Thinking like Barnabas...]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그 애틋한 마음이 그 자식에게 전해졌을 때, 그 사랑은 큰 위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돌아가셨기에 더 이상 그 모습을 뵐 수는 없지만 작가는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그 찰밥을 잊지 않았을 뿐더러
당연한 순리인 것 처럼 소풍엔 찰밥이라는 전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찰밥은 다름 아닌 '책'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부유하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내 어머니께서는 한푼이 아쉬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들래미가 읽을 책엔 통 크게 투자를 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어렸지만 어머니의 그런 씀씀이를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으니 찰밥의 작가 윤오영 선생이 느꼈을 그 '자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애틋함과 소신 있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 유년시절은 참으로 풍요했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풍요는 아니었을지라도 내 가슴은 늘 벅차올랐고 장래의 꿈은 장대했습니다.

다 옮겨적지 아니한 수필의 후반부엔 작가의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에 대한 회상의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너의 성공하는 것을 못 보고 가지만 너는 이 담에 꼭 크게 성공해야 한다."

오십줄에 들어선 작가는 아직도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성공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까지도
자식의 성공을 염원하신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만은 가슴에 충만하여 감격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비록 모정이 아니고 부정일지라도 이런 애틋함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
내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을 내 두 아들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일상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국을 보며  (4) 2010.06.20
에스프레소 (Espresso)  (0) 2010.06.19
비상 - 박차고 오르다  (0) 2010.06.03
목련의 일생 - 사월의 노래  (3) 2010.06.01
남산  (0) 201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