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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방망이 깎던 노인은 가고 없지만

by likebnb 2010. 6. 21.

천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을 삼일 만에 독파하는 성격이지만 윤오영님의 수필집
방망이 깎던 노인은 백사십 페이지에 불과함에도 근 삼주에 걸쳐서야 읽기를 마쳤다.

이 석주 간의 시간 동안 수필이라는 것이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먼저 윤오영 선생은 우리 나라 수필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제대로 하신 분이다.
그의 대표적인 수필로는 우리 학창시절의 교과서에서 만났던 방망이 깎던 노인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순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방망이 깎던 노인의 한 대목이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다 좋지만 게 중에서도
눈에 띄는 두고 두고 읽고 음미하고 싶은 몇 편을 들자면 일전에 감상을 밝혔던 찰밥이 있겠고, 엽차와 인생과 수필,
순아, 한국적 유머와 멋, 오동나무 연상, 마고자, 처빈난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숙연함에 젖어들게 했던 와병수감은 여러 가지 소회를 갖게 만들었다.
친구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문필가의 자세에 대해서 그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짜내어 기록한
한줄한줄의 글이 책장을 쉽사리 넘길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제는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윤오영 선생의 삶은 그 자신 다름아닌 방망이 깎던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으려면..." 이 한 마디가 나의 삶의 자세를 바로서게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이제 돌려줘야 하는데 서가에 꽂아두고 간간이 되새김질 하고픈 책이다. 
다음 주말엔 서점에라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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