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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문경새재-주흘관 이야기

by likebnb 2010. 9. 27.






이어지는 문경새재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 후에 세 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이전의 글에서 사진으로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을 겪는 중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우던 영남과 서울을 잇는 요충지였던 이곳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 전세에 크게 영향을 미친 후, 선조 27년(1594년)부터 성곽 등을 수축하기 시작하여 숙종 34년인 1708년에
비로소 제1관문까지 축조하여 세 개의 관문을 모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이 이번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주흘관을 비롯한 조곡관과 조령관, 세 개의 관문은
1966년에 사적 147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남 제 1관문의 이름은 아마도 오른쪽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해발 1,105미터의 주흘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주흘관 성문 양 옆으로 제법 길게 늘어선 성곽과 그 앞의 넓디 넓은 잔디밭은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주는데요
우리가 종종 사극에서 보게되는 전투 장면의 성곽이 바로 이 성곽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흘관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KBS촬영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을 촬영한 이래로 수 많은 사극들의 촬영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흘관으로 가려면 우선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합니다. 그 이름은 관문교이구요.





관문교는 깊은 계곡에서부터 흘려 내려온 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는 작은 개울을 건네주는 다리입니다.





다리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석상에 잠자리가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나중에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작은 아이가 이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작은 아이는 잠자리에 정신이 팔려 앞서간 엄마와 형은 잊은 듯 합니다. 저 역시도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느라 열중이구요.







잡았던 잠자리를 다시 놔주고 작은 아이도 결국 일행과 합류하였습니다. 사실 그 사이에 주흘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지요.
삼모자가 주흘관을 향해 다시 걸어가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개나리 봇짐을 매고 과거길에 올라 이 관문을 통과했을 옛 선비들의
모습을 그려 봤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서 그들은 어떤 다짐을 하였을까요?





왼편으로 보이는 조령산 정상은 안개인지 구름인지로 가려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잠시 어두워지면서
저 편으로 환하게 보이는 풍경이 왠지 새 힘을 북돋아 주는 것 같습니다.





문 안 쪽의 현판에는 영남제1관이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백두대간 중 하나인 조령산을 넘나들면서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명실상부한 첫번째 관문인 것입니다. 새도 넘기 힘든 새재로 사회, 문화 그리고 경제의 분수령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통로였던 것이지요.

성문을 들어선 뒤 우리는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될 그 무엇을 기대하면서요. 





문경새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